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타결 1주년을 하루 앞둔 27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평화의소녀상 옆에 꽃다발과 화분 등이 놓여 있다./ 이준헌 기자

 

 

 [기고]70년이 지났어도 ‘위안부’ 문제가 중요한 이유 (경향신문 2018년 7월 10일)

히로카 쇼지  | 국제엠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일본군 성노예제처럼 일정 기간 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을 자행하도록 국가가 직접 조직한 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조직적 폭력이 일본만의 특이한 역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과테말라 등 최근 역사를 통해 우리는 여성폭력이 불러온 암울한 결과를 여러 차례 목격해 왔으며, 오늘날 미얀마에서도 목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러한 폭력의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여기에 이러한 범죄의 기저에 있는 여성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인 개혁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과거의 인권침해를 바로잡는다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소수자의 상황을 개선하고, 성노예제와 같은 끔찍한 범죄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파원칼럼]‘평화’로 가는 머나먼 여정 (경향비즈 2018년 5월 9일)

김진우  | 도쿄 특파원 

이날 행사를 주최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의 이케다 에리코(池田惠理子) 관장은 마무리말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을 열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일본 시민들이 제안을 했고, 각국에서 온 이들이 서로 얼싸안고 했다. 가해자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진정한 평화’를 위한 여정은 멀다. 하지만 역사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어,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데서 미래가 바뀐다는 뜻처럼 들렸다.

 

 

[정동칼럼]위안부피해자 해법은 ‘진실과 정의’ (경향신문 2018년 1월 8일)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국제사회에서는 일본군성노예제의 심각성을 보편적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환기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전시 성폭력과 인신매매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천명이 필요합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한때 너무도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지만, 이제 국제사회에 당당한 인권국가로서 우뚝 선 대한민국의 모습을 전 세계에 천명하고 실천하는 것, 그 길만이 과거에 얽매여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아베 정권의 후진성과 모순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상대적으로 낙후시킬 수 있는 방안입니다.
그 가슴 벅찬 일들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는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정동칼럼]피해자 뺀 ‘위안부 합의’는 무효 (경향신문 2018년 1월 1일)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한·일 양국 간의 위안부 피해자 협상은 이제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이어질 한·일 정부 간의 투명한 협상을 통해 그 내용을 발전적으로 고쳐가고 추후에 한·일 양국의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회의 동의 등을 거쳐 조약으로 체결한 뒤, 양국 정상의 정식 서명과 비준을 거쳐 정식 조약으로 완성해야 한다. 그러한 위안부 피해자 합의만이 진정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 합의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우리인데, 왜 정부가 합의합니까?” 피해자 중의 한 분이었던 김군자 할머니의 토로다. 지난여름에 세상을 떠나셨다. 남은 이들의 책임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기고]‘위안부 보고서’가 한국외교에 주는 교훈 (경향신문 2017년 12월 30일)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여기서 한국 외교에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외교정책에서 대통령과 청와대 중심의 하향식 의사결정 관행을 바꿔야 한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난제를 대일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경우, 정부는 피해자 및 관련 단체, 전문가, 범부처 간 네트워크를 통해 국가지(知)를 모아 다각도로 치밀한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청와대가 직접 외교 교섭에 나서게 되면 폭넓은 정보 수집과 의견수렴이 어렵고 비밀주의에 빠지기 쉽다. 청와대는 관련 부처 간 적절한 역할 분담과 유기적 소통체계를 보장하고, 주무부처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정동칼럼]초국적 시민의 ‘위안부 운동’ (경향신문 2017년 10월 16일)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2015 한·일 합의’에 대한 전반적 검증 절차가 외교부의 TF팀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수치스러운 ‘위로금’ 10억엔으로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도 12월 말 끝난다는 ‘검증절차’ 이후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한국 정부가 어떻게 당사자들의 탈식민적 상상력을 발휘할지, 어떻게 당사자들의 오랜 염원을 반영할지, 인내심을 발휘해 온 정의로운 시민들이 지켜볼 일이다

 

 

[정동칼럼]‘소녀상’ 제대로 보기 (경향신문 2017년 8월 21일)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소녀상에 관심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여러 피해자들의 생애가 응축된 소녀상을 한 명 한 명 구체적인 여성들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의 경험을 들을 귀가 없고 아픈 내면을 들여다볼 눈이 없다면, 이들의 아픔을 경유해 자신의 가해자성을 성찰하고 변화할 마음이 없다면, 소녀상은 그저 일시적 이벤트로 소비되는 반일 민족주의 감정의 촉매제에 불과하게 된다. 소녀상 훼손의 책임은 바로 젠더 부정의에 무감한 당신에게 있다.

 

 

[정동칼럼]‘위안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 (경향신문 2017년 7월 24일)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일본 정부가 서울의 주일대사관 루트를 통해 한국 정부의위안부피해자 기림일 제정에 공식 항의했다고 한다. 이유는 “2015년 12월의 한·일 합의에 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일본이 아직도 공식적으로 법적 책임을 진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죄에 대한 인정은, 진상 규명을 통한 사실 적시와 당사자의 직접적 사과와 연관된다.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는 사과에 대한 정당성은 누가 부여한 것인가. 분명한 점은 죄의 책임이 추궁되지 않고 지연되는 사이, 정치적 책임의 영역은 더 넓어지고 있는 역설이다. 전 지구적 평화와 정의를 지향하는 일본 시민들은 법적·도덕적 책무는 물론 지금도 확장되고 전승되고 있는 정치적 책임까지 통감해야 할 것이다.

 

 

[김진우의 도쿄 리포트]유엔과 ‘위안부 합의’ 마찰 속 일본이 잊은 가치 (경향신문 2017년 5월 30일)

김진우 | 도쿄 특파원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보류하면서 유네스코의 난징(南京)대학살 자료 등재에 반발하고, 한·일 위안부 자료의 심사 및 등재를 막아왔다. 유엔 인권최고기구 산하 고문방지위원회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문을 제출했다. 국제무대에서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의 외교전에는 위안부 문제 등 보편적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빠져 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반인도 범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반성하고,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일이다.



[사설]위안부 피해자 두고 3·1절 기념사 할 자격있나 (경향신문 2017년 3월 2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강조하는 데 연설의 3분의 1 가량을 할애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언급은 두 문장밖에 없었다. 황 권한대행은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존중하면서 실천해야 한다”며 “피해자 분들이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받고 명예와 존엄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는 언급은 일절 없었다. 특히 한·일 양국이 위안부 합의 사항을 실천하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황 권한대행의 연설은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법적 책임을 요구해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또 다른 굴욕과 상처를 안길 수도 있다. 이처럼 얕은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황 권한대행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앞에서 3·1절 기념사를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특파원칼럼]아베가 소녀상을 세운다면 (경향신문 2017년 01월 25일) 

윤희일 | 도쿄 특파원 

타국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골몰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자국에 위안부 관련 메모리얼을 세울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러나 과거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소녀상 철거만 무작정 요구하는 아베 정권의 ‘야리카타’(일처리 방식)로는 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소녀상을 없앨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구상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일본이 먼저 나서서 반성의 뜻을 담은 메모리얼을 자국의 어딘가에 설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세상읽기]‘위안부’ 재협상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경향신문 2017년 01월 17일)

황재옥 | 평화협력원 주원장

효력이 무효화된 합의는 어차피 파기되거나 재협상돼야 한다. 국제정치적 강박을 통해 합의를 해놓고, 비엔나협약을 들먹이면서 약속을 지키라고 일본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재협상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이 냈다는 ‘거출금’ 10억엔부터 돌려줘야 한다. 외교의 기본원칙이 무너졌는데 ‘외교협상 결과는 존중돼야 한다’느니 ‘국제관계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외교관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국가신용보다 중요한 것이 인권이고 국민의 자존이다. 차기 정부는 일본에 10억엔을 돌려주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위안부 문제를 재협상해야 할 것이다.

 

 

[유신모의 외교 포커스]위안부 합의 추가 협상 필요하다 (경향신문 2017년 01월 04일)

유신모 | 외교전문 기자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했던 최선의 결과’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의 적나라한 실상은 일본과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정부의 곤궁한 모습이다. 정부가 소녀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일본에 추가 협상을 제의하는 것이다. 추가 협상 제의나 기존 합의 무효 선언이 외교적 부담을 가져올 수 있겠지만, 그것은 대일외교에 실패한 박근혜 정부의 업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적 자존심과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차기 정부가 감내할 수밖에 없다.

 

 

[조호연 칼럼]“돈 받고 일본이 사과했다고 생각하세요” (경향신문 2016년 12월 27일)

조호연 | 논설위원

한·일 위안부 합의가 28일 체결 1년을 맞는다. 합의대로라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그 같은 과정을 밟고 있어야 맞다. 현실은 정반대다.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은 회복되지 않았고 마음의 상처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지금 할머니들은 서글픈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합의가 최선이라며 수용을 강요하는 한국 정부가 상대다. 가해국인 일본 정부를 뒤에 가리고 나선 꼴이다.

 

 

[시론]한·일 위안부 합의의 미스터리 (경향신문 2016년 11월 04일)

김창록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외교 실책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는 마땅히 폐기해야 하고, ‘화해치유재단’은 즉각 해산해야 한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실시해 그 잘못된 합의가 나오게 된 이유, 합의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 지우기에 매달리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시론]‘위안부’ 문제, 판이 바뀌었다 (경향신문 2016년 09월 02일)

김창록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반세기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고령의 피해자들과 전 세계 시민들의 지난한 노력이 모여 ‘가해자’ 일본의 국가책임을 묻는 거대한 강줄기를 만들어 왔는데 돌연 한국 정부라는 ‘몰역사의 보’가 가로막고 나섰다. 그래서 이제 ‘일본의 책임’만이 아니라 ‘한국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지난 8월30일 마침내 피해자들이 “참으로 참담한 심정으로” ‘자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에 헌법재판소가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위헌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유금’ 10억엔을 받고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덮으려고 하는 데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에 대한 책임 추궁이다. ‘부작위’가 이어지는 한 매일매일 그 책임은 더 커진다.

 

 

[유신모의 외교포커스]위안부 역사는 정치적 합의로 지워지지 않는다 (경향신문 2016년 09월 01일)

유신모 | 외교전문 기자

일본 정부가 3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송금함에 따라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이행됐다.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양국 정부 간 현안으로 불거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렇게 한·일 정부 간 현안의 목록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반인도주의적 범죄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담은 국제인권법에 의해 다뤄지기 때문에 해당 정부 간 합의로 종료될 수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죄와 용서, 화해가 이어져야 비로소 종료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그 작업을 포기했다. 2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시민사회의 몫이 됐다.

 

 

 

[시론]일본의 10억엔, 필요 없다 (경향신문 2016년 08월16일)

김창록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작년 12월에 발표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한·일 합의의 실체가 보다 명확해졌다. 지난 12일 기시다 외상은 윤병세 외교장관과 통화를 한 후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내놓을 10억엔은 “의료와 간병”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명명백백하게 확인되었다. 일본으로부터 10억엔을 받을 명분도 실리도 이유도 없다. 20년 이상 ‘공식사죄와 법적 배상’을 외쳐온 피해자들의 피맺힌 외침을 ‘화해와 치유’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미명으로 덮으려 하는 것은 그저 ‘몰역사’일 뿐이다.

 

 

[시론]무엇을 위한 ‘위안부 재단’인가 (경향신문 2016년 06월 03일)

김창록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31일 ‘일본군 위안부 재단설립 준비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었다. 회의 후 준비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일본 정부가 내놓기로 한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라 ‘치유금’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배상의 성격’을 가진 돈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작년 12월28일에 발표된 한·일 외교장관 ‘합의’의 상처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일본의 범죄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법적 책임을 부정하며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라고 한다.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잘못된 ‘합의’를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로 하여금 법적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읽기]인권을 밟고 ‘불가역’이라니 (경향신문 2016년 04월12일)

황재옥 | 평화협력원 주원장

 

이번 위안부 합의는 일본에 아베 같은 국수주의 총리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국제정치적 필요 때문에 한국에 불리하게 마무리가 됐다. 그러나 상황변화 여하에 따라 재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향후 국제사회의 여론, 일본 국내정치 변화 등 상황 여하에 따라 이번의 ‘최종적·불가역적’인 합의는 뒤집을 수 있다. 위안부 문제가 기본적으로 인권 문제라는 점에서 명분은 일본이 아닌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가 수용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안이 나올 때까지 위안부 문제의 재협상을 계속 촉구해야 한다.  

 

 

[시론]12·28 합의 이후, 여전히 남는 의문 (경향신문 2016년 04월 08일)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12·28 합의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역사성을 진중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주권을 방기하고, 미래 기억을 약화시켜 왔다. 심지어 비판을 옥죄어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국내에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뿐이다. 재단의 피해자 지원 이외에 무언가를 할 생각이 있는지 걱정이다. 차라리 1엔만 받겠다고 했다면 국가의 위신과 국민의 자존심이라도 세웠을 텐데. 국제적으로는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 북한을 더 세게 압박하고 있다. 한·일 협력으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안정시키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남북한 대결 구도를 강화하며 역사적 정체성의 뿌리를 흔들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시론] 일본의 역사왜곡이 ‘위안부 합의’의 본질 (경향신문 2016년 03월 22일)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2017년부터 주로 고교 1학년생들이 사용하는 사회과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한다. 상당수 교과서에서 “연행”이 “모집”으로, “끌려갔다”가 “보내졌다”라는 표현으로 바뀌고 “군”이 관여했다는 내용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교과서 검정결과가 역설적으로 한·일합의 “내용”과 “정신”을 명확히 드러냈다고 본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당사자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양국 간 정치적 합의에 불과했다는 사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개선의 걸림돌로 규정함으로써 “발전적 미래”를 위한 “걸림돌”을 치울 책무도 한국정부 스스로가 떠안았다는 사실, 쌍방 간 외교적 성과라 내세우는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란 과거사와 연관된 모든 책임으로부터 일본을 자유롭게 해준 대신, 저항하는 한국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신모의 외교포커스] 위안부 문제 빠져나가기 (경향신문 2016년 02월 03일)

유신모 | 외교전문 기자

지난해 12월28일 한·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한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법적 책임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라고 재확인했다. 의회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국가 범죄가 아니라고 부인했고 유엔에 제출한 문서에는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고 명시했다. 합의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 이것에 발목이 잡혀 할 말도 제대로 못한 채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다. 반인도주의적 전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대체 뭐가 뭔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녹색세상]‘불가역’을 뒤집으려면 (경향신문 2016년 01월 21일)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작년 말 기습적으로 발표된 한·일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불가역적(irreversible)이란 단어였다.

불가역적이라는 말은 한국정부가 아니라 일본정부의 요구로 들어갔을 것이다. 일본에서 최종이라는 말로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는지 다시는 그 문제를 가지고 떠들지 말라는 의미로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넣자고 했을 것 같다. 그러니 일본 총리가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하지만, 불가역적이라는 말은 그를 비롯한 일본의 우파들이 그럴 마음이 전혀 없음을 드러내준다. 아베가 일본 의회에서 자기 입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기를 거부한 것도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동칼럼] 한·일 간의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헌법 (경향신문 2016년 01월 18일)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일 간의 12·28 합의는 법적인 효력을 가지기 힘든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국가 간의 합의가 법적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으로 문서화돼야 하는데 문서조차 없기 때문이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그 유가족 등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사항’에 관한 국가 간의 합의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함에도 이러한 동의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고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인 이번 한·일 간 합의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와 국민들의 뜻을 널리 수렴하고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조약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헌법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헌법적 요청이다.

 

 

[시론]위안부 협상, 어찌 화해일 수 있으랴 (경향신문 2016년 01월 14일)

김정훈 | 전남과학대 교수·인문학

한·일 외교부의 졸속적인 위안부 문제 밀실합의로 국민들의 원성이 높다. 이번 합의는 위안부 현안과 강제징용 피해자 건의 분리 대응에 따른 결과 도출이었다. 따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 등 또 다른 난제를 풀어야 할 양국 정부에는 선례가 되는 셈인데, 그 인식의 단면이 씁쓸하다. 외세 개입, 피해배상 부재, 피해자 의사 미반영에 의한 졸속 타결이 얼마나 큰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당국자는 목도하고 있으리라.

 

 

[박태균의 역사와 현실]1965년의 교훈 (경향신문 2016년 01월 14일)

박태균 | 서울대 교수·국사학

돈 외에는 어떠한 명분도 얻어내지 못했던 한일협정 후 50년의 역사는 한국 정부에 아무런 교훈도 주지 못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불가역적 합의’로 모든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극우적 일본 정부가 할 만큼 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한국 정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송혁기의 책상물림] 대승적 이해 (경향신문 2016년 01월06일)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대승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약하고 불리한 위치에 있거나 적어도 그들과 함께하는 입장이어야 한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철저한 조사와 투명한 공개, 그리고 법적 책임 인정과 명백한 사죄에 달려있다. 한국은 당사자인 할머님들의 입장에서 이를 당당히 요구함이 마땅하고, 일본은 이 ‘불가역’의 범죄를 석고대죄하는 것을 원점으로 새로운 출발을 도모해야 한다. 본질이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도 모르게 ‘불가역’의 쐐기를 박아 버리고 빨리 갈 길 가자는 데에 합의하는 ‘외교적 성취’를 이룬 정부가 말한다. “국민 여러분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번 합의를 이해해 주시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특파원칼럼] ‘위안부’ 합의 연출자, 미국 (경향신문 2016년 01월 06일) 

손제민 | 워싱턴 특파원

미국은 지난 몇년간 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다양한 급에서 한·일에 화해를 권유했다. 양국이 이 문제에 가로막혀 군사정보공유나 미사일방어(MD) 등에서 충분히 협력하지 못하는 것을 미국은 불만스러워했다. 미국은 한·일관계 경색을 중국의 부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동북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장애물로 여겼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후과를 이해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경제와 세상]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경향신문 2015년 12월 31일)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은 지금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65년 대일 청구권 자금을 둘러싼 한일협정(정확한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똑같다. 그때 한국정부는 무상원조 3억달러, 유상 차관 2억달러(민간 차관 3억달러 별도)를 일본 정부로부터 받는 조건으로 모든 문제제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징용 근로자가 배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일본으로 넘어간 문화재를 반환받지 못하는 이유도, 그리고 위안부가 배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이번 위안부 협상은 과거의 이 잘못을 바로잡을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우리 정부는 또다시 돈 몇 푼에 국격과 진실과 양심을 팔아넘겼다.

 

 

[표창원의 단도직입]‘송백권 사건’과 ‘위안부 소녀상’ (경향신문 2015년 12월 31일)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2015년 12월28일 대한민국 정부는 “10억엔의 치유사업지원기금 지급, 외교장관이 대신 읽은 총리의 사과”를 받은 대가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합의를 해주었다. 같은 시간, 일본을 대표하는 왕실이나 총리는 이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일정을 소화했고, 총리의 부인은 군 위안부 징집 가해자들의 위패가 포함된 야스쿠니신사에서 공개적이며 공식적인 참배 행사를 가졌다. 총리의 사과문을 대신 읽었던 일본 외무상은 돌아서자마자 “일본 정부가 잃은 것은 10억엔뿐”, “법적 책임은 이미 1965년 협정으로 모두 끝났다는 것을 재확인하며, 다만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고, 이번 협정으로 책임 문제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 “이제 소녀상이 이전되는 것으로 안다”는 ‘한일협정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잇따라 내놨다. 반면, 한국 정부는 “처음으로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이제 한·일 관계 정상화로 막대한 안보,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라며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유신모의 외교포커스]접근법부터 잘못된 정부의 ‘위안부 문제’ (경향신문 2015년 06월 23일)

유신모 | 외교전문 기자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사안이 아니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깊이 연관된 법적 성격을 가진 사안이다. 박 대통령이 말한 ‘위안부 문제 협상의 마지막 단계’는 어떤 방안의 어떤 단계를 지칭하는 것인가. 애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이나 한·일 관계 새 출발을 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선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입구에 갖다놓을 선결 과제가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진전과 함께 관계 개선이 이뤄진 결과로 해결되어야 하는 장기적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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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향신문 DB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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